2012년 7월 2일 월요일




1498년(연산군 4) 최초의 사화인 무오사화(戊午士禍)가 일어났다. 스승인 김종직의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사초에 실었던 것이 발단이었다. 장본인은 영남사림파의 중심이자 사관(史官)으로 있었던 김일손(金馹孫, 1464~1498). 사림파를 제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활용한 훈구파의 정치 공작으로 김일손은 극형에 처해졌고, 그의 스승인 김종직 마저도 부관참시(剖棺斬屍)를 당했다. 그러나 꺾이지 않았던 그의 직필(直筆) 정신은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후대까지도 그를 널리 기억하게 하였다.



영남사림파의 기수, 중앙으로 진출하다

15세기 후반 조선의 정치사는 기성의 정치세력인 훈구파에 대항하는 사림파의 성장이 두드러진 시기였다. 성종대 후반부터 서서히 중앙정계에 등장하기 시작한 사림파는 기존에 정치적ㆍ사회적 특권을 향유하고 있던 훈구파를 견제하였다. 특히 이들은 언관이나 사관과 같이 비판적인 기능을 할 수 있는 직책에 포진되어 훈구파의 기득권 비리에 서서히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을 중심으로 하는 영남사림파의 맹장 중에 바로 김일손이 있었다. 김종직의 학문과 사상을 계승하며 소장 영남 사림파의 리더로 활약했던 김일손은 언관과 사관으로 있으면서 기성의 잘못된 정치 형태를 고발하려 했다. 이것은 그가 사관으로 있으면서, 사초(史草)에 훈구파의 거두인 이극돈(李克墩, 1435~1503)의 비행을 적나라하게 기록하고 스승인 김종직의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싣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실록의 편집이 끝나면 세초(洗草- 실록 편찬이 완료된 뒤 사초를 없애는 일)를 하여 비밀리에 부쳐져야 하는 것이 원칙인 그의 사초가 훈구파들에 의해 입수되어 정치적 참극이 일어났다. 1498년의 무오사화(戊午士禍), 사람파와 훈구파의 힘겨루기의 서막을 연 사건이기도 하였다.

김일손은 1464년(세조 10) 경상도 청도군 상북면 운계리 소미동에서 태어났다. 자는 계운(季雲), 호는 탁영(濯纓), 본관은 김해이다. 조부인 김극일(金克一)은 길재(吉再)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부친 김맹(金孟) 역시 가학을 계승하고 김종직의 부친 김숙자(金叔滋)에게 학문을 배웠다. 김일손 또한 김종직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니 김일손 가문은 정통 영남사림파의 학맥을 계승한 셈이 된다. 어린 시절 김일손은 부친을 따라 용인에서 살았으며, 이때 [소학]을 배우기 시작했다. [소학]은 사림파의 학문적 정체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책이다. 영남사림파의 대표학자 김굉필(金宏弼)은 ‘소학동자’로 까지 지칭되었다. 15세에는 단양 우씨를 부인으로 맞았으며, 이해 고향 청도를 거쳐 선산에 사는 정중호(鄭仲虎), 이맹전(李孟專)에게도 학문을 배웠다. 16세에 진사초시에 합격했으나, 이듬해 예조의 복시(覆試)에는 실패했다.

17세 때 고향에 돌아온 김일손은 그의 인생에 있어 중대한 전환점을 맞는다. 영남사림파의 영수 김종직이 있는 밀양으로 가서 그의 문하에 들어간 것이다. 김종직은 김일손의 부친 김맹의 [효문명(孝文銘)]에서 청도에서 올라온 김극일의 두 아들 김기손(金驥孫)과 김일손을 가르친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1472년 김종직은 지리산을 다녀온 후 [유두류록(遊頭流錄)]이라는 기행문을 남겼는데, 김일손 역시 1489년 지리산을 유람하고 [속두류록(續頭流錄)]을 남겼다. 지리산을 사랑하고 기행문을 남긴 것 또한 스승과 제자가 하나였던 셈이다. 밀양에 살던 김종직으로부터 학문을 배운 인연은 김종직의 사후 때까지 끈끈하게 이어진다.

김일손은 23세가 되던 1486년 청도군학(淸道郡學)으로 있으면서, 생원시와 진사시에 합격했다. 생원시는 장원, 진사시는 차석이었다. 이해 가을의 문과에서 2등으로 급제하여 승문원의 권지부정자(權知副正字)로 관료로서 첫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김종직의 문하에서 함께 수학하던 최부, 신종호, 표연수도 함께 급제하였다. 1487년 김일손은 진주향교의 교수로 부임하여, 진주목사와 진양수계(晉陽修稧)를 조직하였으며, 정여창, 남효온, 홍유손, 김굉필, 강혼 등과 교유하면서 사림파의 입지를 굳건히 해 나갔다. 이후 김일손은 홍문관, 예문관, 승정원, 사간원 등에서 정자, 검열, 주서, 정언, 감찰, 지평 등 언관과 사관의 핵심 요직을 맡으면서 적극적이고 강직한 사림파 학자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1490년 무렵부터는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스승인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사초에 싣고, 남효온이 지은 [육신전(六臣傳)]을 교정하고 증보(增補- 모자란 내용을 보탬)했다. 소릉(昭陵- 단종의 모후인 현덕왕후의 능)의 위호(位號)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이러한 활동은 수양대군의 불법적인 왕위찬탈을 비판하고 세조에 의해 왕위를 빼앗긴 단종의 정통성을 강조한 조처로서, 나아가서는 세조의 집권을 돕고, 그 그늘에서 크게 권력을 차지한 훈구파들의 입지를 약화시키는 것이었다.

김일손에 대해서는 무오사화의 대표적인 희생자라는 이미지 때문에 사관으로서의 그의 강직한 면모만이 부각되어 있다. 그러나 그는 ‘문장을 쓰려고 붓을 들면 수많은 말들이 풍우같이 쏟아지고 분망하고 웅혼함이 압도적인 기상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학문과 문장에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현실에 대한 개혁책 제시에도 적극적이었다. 실록이나 그의 문집인 [탁영집(濯纓集)], 그의 조카인 김대유의 [삼족당집(三足堂集)]등의 기록에는 이러한 면모가 잘 나타나 있다. 김대유는 숙부인 김일손의 연보를 쓰면서 김일손의 호매하고 강직한 성품과 함께 경제지책(經濟之策)을 품고 있었음을 기록하였는데, 이러한 점은 실록에서 그가 제시한 여러 정책에서도 나타난다. 먼저 인사정책에 대해서는 효행과 염치가 뛰어난 자와 재질이 훌륭한 종실(宗室- 왕족)의 등용, 천거제의 충실한 활용 등을 주장했는데 이는 훗날 조광조 일파가 주장한 천거제의 논리와도 유사하다. 또한 언관의 활동 보장과 지방관의 사관 발탁 등을 건의하여 언론권의 강화를 주장하였고, 법전을 지방 관아에서 충분히 활용할 것, 사원전과 서원 노비의 혁파 등을 건의하였다. 국방대책으로는 무예가 뛰어난 문관을 뽑아 변방의 장수에 제수함으로써 왜구의 침입을 방비할 것을 제시하고 당시 충주나 웅천에서 있었던 왜인들의 소란 사건에 대해서는 강력한 응징을 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의 사후에도 왜구들의 소요가 계속 일어났고 1592년 임진왜란까지 일어났음을 고려하면 선견지명을 보인 셈이다.


위험한 사초(史草), 무오사화의 발단이 되다

연산군이 즉위한 후 사림파의 기수로 우뚝 선 김일손은 가장 적극적이고 활발하게 시무책을 제시하고 역사 바로 세우기 활동의 선두에 섰다. 그가 제기한 소릉 복위 문제는 정국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소릉은 문종비 권씨의 위호로서 권씨는 단종을 낳은 후 곧 죽었는데 세조 집권 후 추폐(追廢)되어 종묘에는 문종의 신위만이 배향되어 있었다. 김일손은 소릉과 묘주(廟主)를 복위하여 문종에 배향할 것을 주장하였는데, 세조의 그늘이 여전했던 시대상을 고려하면 매우 개혁적인 주장이었다. 언관으로서 그의 위상이 높아지는 것에 비례하여, 그에 대한 훈구파의 기피는 훨씬 커지게 되었다. 훈구파와 절대 타협하지 않는 그의 강한 기질과 직선적 성향은 훈구파 대신들에게 김일손을 정치적 공적(公敵)으로 인식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훈구파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무오사화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새로운 사회, 정치세력으로 성장한 사림파와 기존의 기득권 세력인 훈구파와의 갈등에서 비롯된 정쟁이다. 또한 이후 4번에 걸친 사화의 신호탄이 된 사건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발단에 섰던 인물이 바로 김일손이었다. 무오사화의 시작은 성종 사망 후 실록청의 구성에서 비롯된다. 조선시대에는 왕이 사망하면 바로 실록청을 구성하고, 전왕이 생존해 있을 때 기록한 사초를 토대로 하여 실록을 편찬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김일손은 성종 때 사관으로 있으면서 그가 보고 들은 내용을 사초로 기록해 두었다. 그런데 이 사초를 토대로 실록을 편찬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당시 실록청 당상관으로서 [성종실록] 편찬의 책임자였던 이극돈이 미리 사초를 열람할 기회가 있었던 것이다. 이극돈은 광주 이씨로 그의 집안은 대대로 권력을 누려온 전형적인 훈구파였다. 김일손이 작성한 사초 중에는 이극돈과 관련된 것도 있었다. 정희왕후의 상을 당했을 때 장흥의 관기를 가까이 한 일과 뇌물을 받은 일, 세조 때 불교중흥 정책을 편 세조의 눈에 들어 불경을 잘 외워 출세했다는 것 등 대부분 부정적인 내용들이었다. 김일손의 위험한(?) 사초를 입수한 이극돈은 전전긍긍했다. 그렇다고 사관이 쓴 사초를 함부로 폐기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김일손을 찾아가 삭제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김일손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결국 이극돈은 검증된 정치 공작의 귀재 유자광(柳子光)을 찾았다. 유자광은 궁중에 자신과 연계하고 있던 노사신, 윤필상 등 훈구파 대신들을 움직여 김일손 등이 사초에 궁금비사(宮禁秘史)를 써서 조정을 비난했다는 내용을 올려 연산군의 귀에 들어가게 했다. 그렇지 않아도 사림파들의 왕권 견제에 불만을 느끼고 있던 연산군은 사초를 마침내 왕에게 올리게 하라는 전대미문의 명을 내렸다. 독재군주의 전형을 그대로 보여준 셈이다.

김일손의 사초에는 세조가 신임한 승려 학조(學祖)가 술법으로 궁액(宮掖)을 움직이고, 세조의 총신이자 훈구파인 권람(權擥)이 노산군의 후궁인 숙의 권씨의 노비와 전답을 취한 일 등 세조대의 불교 중흥책과 훈구파의 전횡을 비판한 글과, 황보인과 김종서의 죽음을 사절(死節- 절개를 위해 목숨을 버림)로 기록하고 이개, 박팽년 등 절의파의 행적을 긍정적 입장에서 기술하는 내용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기본적으로 세조의 왕의 찬탈을 부정적으로 보고 그 정책에 비판적 태도를 취하는 사림파의 입장이 담겨져 있었던 것이다. 그 중에서도 스승인 김종직의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사초에 실은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진나라 말 숙부 항우에게 살해당한 초나라 의제를 조문한 이 글은 바로 선왕인 세조의 단종 시해를 중국의 사례를 들어 비판한 글이었다. 당시 김일손은 모친상으로 청도에 내려가 있었지만 바로 서울로 압송되었다. 훈구파들은 김일손의 불손한 언행이 스승 김종직의 영향 때문이라 주장하면서 사림파의 일망타진에 나섰다. 연산군은 사초 사건에 연루된 김일손을 비롯하여 권오복, 권경유 등을 능지처참하고, 표연말, 정여창, 최부, 김굉필 등 김종직의 제자들을 대거 유배시켰다. 김종직 마저 그의 무덤을 파헤쳐 관을 꺼내고 다시 처형하는 최악의 형벌인 부관참시(剖棺斬屍)를 당했다.  이것이 1498년에 일어난 무오사화로서 김종직, 김일손으로 대표되는 영남사림파의 몰락을 가져왔다.


사림파 성장의 자양분이 되다


김일손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지은 자계서원. 무오사화로 화를 입은 후 서원 앞을 흐르는 냇물이 3일 동안 붉게 변한 데서 ‘자계’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
경북 청도군 이서면 서원리 소재.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83호. <출처: 문화재청 홈페이지>


무오사화의 칼끝은 35세의 젊은 나이로 김일손의 생을 마감하게 했다. 김일손이 처형을 당할 때 냇물이 별안간 붉은 빛으로 변해 3일간을 흘렀다고 해서 ‘자계(紫溪- 붉은 시냇물)’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그를 배향한 사당도 자계사(紫溪祠)가 되었다. 자계사는 사림정치가 본격적으로 구현된 선조대에 자계서원으로 승격되었고, 1661년(현종 2) ‘자계’라는 편액을 하사받았다.

김일손의 추숭 작업에 가장 힘을 기울였던 인물은 조카 김대유(金大有, 1479~1551)이다. 김대유는 40세 때 청도의 사림들과 함께 자계사를 건립하였으며, 유일(遺逸)로 천거를 받아 관직을 제수 받았으나 거듭 사직하고 숙부의 뜻을 받들며 처사(處士)의 삶을 살아갔다. 김대유는 41세 때 김일손의 유고(遺稿)를 모아 자계사에서 판각(板刻)을 했으며, 70세 되던 해에는 숙부인 김일손의 연보를 편집하였다. 그만큼 숙부를 존경하고 그의 정신이 이어지기를 바랐던 것이었다. 김대유는 경상우도 사림의 종장(宗匠- 경학에 밝고 글을 잘 짓는 우두머리)이 되는 남명 조식이 존경했던 인물로서, 김일손의 사림파 정신은 김대유를 거쳐 조식으로 이어지면서 영남사림파의 학맥에 큰 분수령을 이루었다. 조식은 김일손에 대해 ‘살아서는 서리를 업신여길 절개(凌霜之節)가 있었고, 죽어서는 하늘에 통하는 원통함이 있었다’고 하면서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사림파의 젊은 기수로서 훈구파의 전횡에 맞섰던 김일손은 짧은 생을 마감했지만 그의 삶은 사림파의 성장이라는 도도한 역사적 흐름을 상징적으로 반영하였다. 훈구파를 대신하여 새로운 사상과, 정치이념으로 부상한 사림파의 선봉에 서서 김일손은 현실을 냉철히 인식하였고 적극적인 언관과 사관 활동으로 부조리한 현실에 적극 맞섰다. 김일손처럼 행동하는 사림파의 모습은 훗날 조광조에게도 이어졌고, 결국에는 네 번의 사화라는 대탄압에도 불구하고, 사림파가 궁극적으로 역사의 승리자가 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 사림파의 도도한 성장에 훌륭한 자양분을 마려해준 학자 김일손. 그가 배향되어 있는 청도의 자계서원을 찾아, 붉은 시냇물처럼 타올랐던 김일손의 붉은 마음을 되새겨보기를 바란다.


참고문헌: 민족문화연구소, [탁영 김일손의 문학과 사상], 영남대학교출판부, 1998.



신병주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학예연구사를 거쳐 현재 건국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역사의 대중화에 깊은 관심을 가져 KBS <역사추리>, <역사스페셜>, <한국사 傳> 등의 자문을 맡았고, 쓴 책으로는 [고전소설 속 역사여행], [조선 왕실 기록문화의 꽃 의궤], [조선 중, 후기 지성사 연구], [규장각에서 찾은 조선의 명품들], [이지함 평전] 등이 있다. 최근에는 조선시대 사학회 총무이사,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건립 전문위원, 외교통상부 외규장각도서 자문포럼 위원으로 활동하며 조선 시대의 왕실 문화와 기록 문화에 깊은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그림 장선환 / 화가, 일러스트레이터
서울에서 태어나 경희대학교 미술교육학과와 동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했다. 화가와 그림책 작가로 활동을 하고 있으며, 현재 경희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http://www.fartzzang.com

2011년 11월 19일 토요일

한국노총, 돈 때문에 백기투항?…노조법 재개정투쟁 포기

“전임자 임금 지원 중단”
정부·경총, 돈줄죄기에
이용득 위원장 공약 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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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 고용노동부와 “현 정권 임기 내에서는 타임오프(노조전임자 근로시간 면제 제도)와 복수노조 등을 담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 요구를 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합의문을 작성해 논란이 되고 있다. 이번 합의문은 한국노총이 정부에 사실상 ‘투쟁 포기 각서’를 써준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9일 고용부와 한국노총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들은 8일 만나 한국노총이 노조법 개정 투쟁을 하지 않는 대신, 상급단체 파견전임자 임금 문제 등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서 논의하기로 했다. 이용득 위원장은 노조법 전면 재개정을 공약으로 걸고 지난 1월 한국노총 위원장으로 당선됐으며 한나라당과 정책연대까지 파기하는 등 대립각을 세워왔는데 9개월 만에 입장을 바꾸게 됐다. 특히 한국노총이 문서로 ‘투쟁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경우는 전무후무한 일이다.

이번 합의는 한국노총의 재정이 어려워진 탓이 크게 작용했다. 한국노총 장석춘 전 위원장은 지난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을 배제한 채 경영계·정부와 복수노조 시행 및 노조 전임자 임금 금지를 합의했다. 당시 노·사·정은 한국경영자총협회가 기업들 돈을 걷어 한국노총에 2년 동안 120억원가량을 지원하기로 했다. 120억원은 한국노총 금융노조, 금속노조 등 상급단체에 파견된 노조 전임자들의 임금이다.

하지만 올 1월 이 위원장이 당선돼 노조법 개정 투쟁에 나서자, 경총은 그동안 19억원가량 지원하던 전임자 임금 지원을 중단했다. 정부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뒷말이 무성했다. 경총 관계자는 “노·사·정이 앞으로 노조법을 연착륙시키겠다는 조건으로 상급단체 전임자 임금 지원에 합의했는데 한국노총이 약속을 어겨 지원을 중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노총은 월 4억원이 들어가는 상급단체 전임자 임금에 대한 재정 부담이 커지자, 은행 대출까지 검토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현 정권에서는 노조법 개정이 어렵다는 판단을 했고, 재정상황이 계속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대화를 통해 부당노동행위나 타임오프 제도 개선 등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는 현실적 선택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타임오프’ 시행으로 재정의 직격탄을 맞은 한국노총은 경총 지원금으로 숨통이 트이긴 했으나, 결국 발목을 잡히게 된 것이다. 김성희 고려대 연구교수(경제학)는 “어떤 이유에서건 노동단체가 정부에 ‘투쟁하지 않겠다’는 내용으로 합의를 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한국노총이 재정자립에 대한 자구책을 조속히 마련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정부와 경총에 끌려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합의를 두고 한국노총 내부에서도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한국노총 산하 전국금융산업노조는 이날 성명을 내고 “이번 결정은 노동자들의 권리를 되찾겠다는 노조법 개정 투쟁을 밥그릇 싸움으로 비하시킨 것”이라며 “정부와의 야합을 즉각 철회하라”고 지적했다. 전국화학연맹도 성명을 내고 “상급단체 파견 전임자 임금 문제는 구걸을 통해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며 “이번 합의는 한국노총의 자존심마저 덤으로 넘겨준 야합”이라고 주장했다.

2011년 9월 20일 화요일

최동원ㆍ노무현, '민주자치 선발투수'의 별이 되다

부산 남자들이 떴고 또 다른 진짜 부산 남자는 갔다. 추석 연휴의 여운이 가라앉지도 않은 지금 부산 정서는 희망, 기대 그리고 비통이 혼재된 것이다.

안철수를 필두로 문재인, 조국 등 부산 남자들을 전국이 주목하면서 '내년 총선과 대선의 키는 PK(부산경남)가 쥐고 있다'는 전망들이 쏟아졌다. 추석 연휴에 부산 사람들은 "내 묵고 사는거 하고 무슨 상관이고"라고 특유의 퉁명스러운 반응을 보이면서도 "서울 분위기가 그렇나? 이번에는 함 해보는 기가"라는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안철수는 부고(부산고)나왔고 문재인은 경고(경남고)라매", "조국은 대신동이라카더라"는 등의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들과 인연을 맞춰보는 모습도 많이 보였다.

그런데 14일 새벽, 진짜배기 부산의 아들 최동원이 영면했다. 한국시리즈 7경기 중 5경기에 출장해 4승 1패, 롯데 우승 확정 순간 부산에서 심장마비 사망자 발생 등 만화 스토리로도 개연성이 떨어지는 전설의 주인공. 최동원은 부산에선 단지 한 사람의 유명 운동선수가 아니다.

레전드는 환희와 성취 이면의 역경과 좌절로 비장미를 갖추고 그 완결성을 더한다. 최동원이 그렇다. 대구 삼성의 한국시리즈 파트너로 '간택'된 부산 롯데의 비루함을 나홀로 4승이라는 기적으로 뒤바꿔 버린 영웅에게 돌아온 것은 골칫거리라는 딱지와 트레이드라는 배신이었다.

이후도 TV예능프로 패널, 의류사업 등 야구판 밖을 전전하던 그는 연고도 없는 대전 한화의 코치 유니폼을 잠깐 입었을 뿐 부산으로 돌아오진 못했다. 그리고 53세의 일기로 불꽃같은 삶을 마무리지었다.

'민주자치의 선발투수, 건강한 사회를 향한 새 정치의 강속구'


▲ 고 최동원 선수. ⓒ연합
지천명이라는 쉰의 나이에도 "제 가슴속에는 뜨거운 불덩어리가 있어요. 가슴을 태우는 그런 불덩어리요. 아직도 그게 남아 있습니다"(2008년 <중앙일보> 인터뷰 中)라던 최동원 속의 불덩어리가 다른 형태로 표출된 적이 있었다.

최동원은 1991년 초대 광역의원 선거에서 부산 서구 지역구에 출마했다.

그 역시 "머스마라믄 큰 꿈 한 번은…"의 범주에 속한 부산 남자였는진 모르겠지만, 정치행보도 진짜 부산 남자스러웠다.

1988년 선수협 결성에 앞장섰던 그는 그 해 부산일보 파업 현장에 유니폼을 입고 찾아가 격려금 100만 원을 쾌척했었다. 최동원의 꿈이 결국은 정치에 가 있다는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한 것이 그 즈음이다. 그런 최동원은 중고교 대선배로 그를 그리 총애했던 김영삼 민자당의 영입제의를 뿌리치고 꼬마 민주당 후보로 나섰다. 1987년 대선 당시에도 김영삼 선거 사무소를 자주 드나들었던 최동원은 자타가 공인하는 'YS맨'이었다. 하지만 그의 반골기질은 야당에 더 적합했다.

최동원은 이후 언론 인터뷰에서 "선수협 등을 거치면서 사회적 구조에 대한 문제의식이 생겼어요. 그래서 출마를 결심했습니다. 민주당 후보로 당선된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당시에 민자당에서도 제안이 있었지만 민주당을 택했어요. 그것도 일종의 반골기질 이었는지 모르죠. 하지만 그래야 진정성을 이해 받을 것 같았어요"라고 회고했다.


▲ 출마 당시 포스터.
경남고 동문회가 조직적으로 최동원을 만류했고 안기부 공작설이 나올 정도였지만 최동원은 '민주자치의 선발투수, 건강한 사회를 향한 새 정치의 강속구'라는 최동원스러운 슬로건을 내걸고 선거에 뛰어들었다.

그는 롯데 자이언츠 구단 주식의 일정부분을 시민 공모주로 바꿔 시민의 구단으로 재탄생 시킨다는 급진적 공약을 제시했고 유세장에선 "YS와는 경남고 선후배사이지만 대선배의 3당야합 부도덕성을 선거로 심판받기 위해 출마했다"고 기염을 토했다.

최동원의 경남고 동기동창인 이호철 전 민정수석은 "(최동원 별세) 소식 듣고 술 많이 먹었다"면서 "잘 안 알려져 있지만 동원이가 3당 합당 이후 전대협 집회에 참석한 적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

당시 꼬마민주당 최고위원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 등과 함께 최동원 지원 유세에 나섰던 김정길 전 장관은 "우리도 최 선수를 영입하고 싶었고 최 선수도 흔쾌했다"면서 "생각보다 훨씬 더 선거도 잘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그는 6000여 표라는 꽤 큰 차이로 낙선하고 만다. 최동원은 정치판에서도 강속구를 뿌려댔지만 YS라는 큰 산을 넘을 순 없었다.

김정길 역시 그 이듬해 14대 총선에서 노무현과 나란히 낙방거사가 되고 말았다.

'아들 삼고 싶은 남자'와 '사위 보고 싶은 남자'의 차이

홈런을 맞고 같은 코스로 똑 같은 공을 찔러넣는 거만할 정도의 자존심, 연봉 협상장을 박차고 나오는 불뚝 성질, 프로야구 선수협 초대 대표로 상징되는 반골기질, 암이 온 몸을 갉아먹고 있어도 마지막까지 "내는 괜찮심더"라는 탕탕 큰소리까지…. 만약 부산 정서를 오롯이 육화(肉化)시킬 수 있다면 그것은 최동원이라는 형태일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결국 다른 길을 걸었지만 김영삼과 노무현 두 사람 모두에게 묻어나는 어떤 냄새다. 그 냄새의 주인공이 바로 최동원이다. 하지만 노무현은 이미 갔고 김영삼은 노쇠했고 최동원도 갔다.

새로운 부산 남자들의 냄새는 다르다. 안철수, 문재인, 조국…. 소프트한 감성과 내 이야기를 잘 들어줄 것 같은 느낌을 갖춘 이들이다.

YS나 노무현, 최동원은 '내 아들이었으면 든든하고 자랑스럽겠다'는 남자들인데 안철수, 문재인, 조국은 '저런 사위 보고 싶다'는 남자들이라는 차이다. 이런 분류를 전하며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자 이호철 전 수석은 "딱 맞는 말이다"고 무릎을 쳤다.

아들의 시대가 가고 사위의 시대가 올 것인가? 부산의 한 신문사 정치부 기자는 "그런 변화의 조짐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면서도 "그래도 바닷가 사람들 '욱'하는 정서가 쉽게 변하진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진짜배기 부산남자의 죽음과 새로운 부산 남자들의 부상이라는 엇갈린 장면이 큰 변화의 서막인지 아직은 가늠키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단지 정치공학적 선거 전망의 차원에서 접근할 문제 이상이라는 것이다.

최동원ㆍ노무현, '민주자치 선발투수'의 별이 되다

부산 남자들이 떴고 또 다른 진짜 부산 남자는 갔다. 추석 연휴의 여운이 가라앉지도 않은 지금 부산 정서는 희망, 기대 그리고 비통이 혼재된 것이다.

안철수를 필두로 문재인, 조국 등 부산 남자들을 전국이 주목하면서 '내년 총선과 대선의 키는 PK(부산경남)가 쥐고 있다'는 전망들이 쏟아졌다. 추석 연휴에 부산 사람들은 "내 묵고 사는거 하고 무슨 상관이고"라고 특유의 퉁명스러운 반응을 보이면서도 "서울 분위기가 그렇나? 이번에는 함 해보는 기가"라는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안철수는 부고(부산고)나왔고 문재인은 경고(경남고)라매", "조국은 대신동이라카더라"는 등의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들과 인연을 맞춰보는 모습도 많이 보였다.

그런데 14일 새벽, 진짜배기 부산의 아들 최동원이 영면했다. 한국시리즈 7경기 중 5경기에 출장해 4승 1패, 롯데 우승 확정 순간 부산에서 심장마비 사망자 발생 등 만화 스토리로도 개연성이 떨어지는 전설의 주인공. 최동원은 부산에선 단지 한 사람의 유명 운동선수가 아니다.

레전드는 환희와 성취 이면의 역경과 좌절로 비장미를 갖추고 그 완결성을 더한다. 최동원이 그렇다. 대구 삼성의 한국시리즈 파트너로 '간택'된 부산 롯데의 비루함을 나홀로 4승이라는 기적으로 뒤바꿔 버린 영웅에게 돌아온 것은 골칫거리라는 딱지와 트레이드라는 배신이었다.

이후도 TV예능프로 패널, 의류사업 등 야구판 밖을 전전하던 그는 연고도 없는 대전 한화의 코치 유니폼을 잠깐 입었을 뿐 부산으로 돌아오진 못했다. 그리고 53세의 일기로 불꽃같은 삶을 마무리지었다.

'민주자치의 선발투수, 건강한 사회를 향한 새 정치의 강속구'


▲ 고 최동원 선수. ⓒ연합
지천명이라는 쉰의 나이에도 "제 가슴속에는 뜨거운 불덩어리가 있어요. 가슴을 태우는 그런 불덩어리요. 아직도 그게 남아 있습니다"(2008년 <중앙일보> 인터뷰 中)라던 최동원 속의 불덩어리가 다른 형태로 표출된 적이 있었다.

최동원은 1991년 초대 광역의원 선거에서 부산 서구 지역구에 출마했다.

그 역시 "머스마라믄 큰 꿈 한 번은…"의 범주에 속한 부산 남자였는진 모르겠지만, 정치행보도 진짜 부산 남자스러웠다.

1988년 선수협 결성에 앞장섰던 그는 그 해 부산일보 파업 현장에 유니폼을 입고 찾아가 격려금 100만 원을 쾌척했었다. 최동원의 꿈이 결국은 정치에 가 있다는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한 것이 그 즈음이다. 그런 최동원은 중고교 대선배로 그를 그리 총애했던 김영삼 민자당의 영입제의를 뿌리치고 꼬마 민주당 후보로 나섰다. 1987년 대선 당시에도 김영삼 선거 사무소를 자주 드나들었던 최동원은 자타가 공인하는 'YS맨'이었다. 하지만 그의 반골기질은 야당에 더 적합했다.

최동원은 이후 언론 인터뷰에서 "선수협 등을 거치면서 사회적 구조에 대한 문제의식이 생겼어요. 그래서 출마를 결심했습니다. 민주당 후보로 당선된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당시에 민자당에서도 제안이 있었지만 민주당을 택했어요. 그것도 일종의 반골기질 이었는지 모르죠. 하지만 그래야 진정성을 이해 받을 것 같았어요"라고 회고했다.


▲ 출마 당시 포스터.
경남고 동문회가 조직적으로 최동원을 만류했고 안기부 공작설이 나올 정도였지만 최동원은 '민주자치의 선발투수, 건강한 사회를 향한 새 정치의 강속구'라는 최동원스러운 슬로건을 내걸고 선거에 뛰어들었다.

그는 롯데 자이언츠 구단 주식의 일정부분을 시민 공모주로 바꿔 시민의 구단으로 재탄생 시킨다는 급진적 공약을 제시했고 유세장에선 "YS와는 경남고 선후배사이지만 대선배의 3당야합 부도덕성을 선거로 심판받기 위해 출마했다"고 기염을 토했다.

최동원의 경남고 동기동창인 이호철 전 민정수석은 "(최동원 별세) 소식 듣고 술 많이 먹었다"면서 "잘 안 알려져 있지만 동원이가 3당 합당 이후 전대협 집회에 참석한 적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

당시 꼬마민주당 최고위원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 등과 함께 최동원 지원 유세에 나섰던 김정길 전 장관은 "우리도 최 선수를 영입하고 싶었고 최 선수도 흔쾌했다"면서 "생각보다 훨씬 더 선거도 잘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그는 6000여 표라는 꽤 큰 차이로 낙선하고 만다. 최동원은 정치판에서도 강속구를 뿌려댔지만 YS라는 큰 산을 넘을 순 없었다.

김정길 역시 그 이듬해 14대 총선에서 노무현과 나란히 낙방거사가 되고 말았다.

'아들 삼고 싶은 남자'와 '사위 보고 싶은 남자'의 차이

홈런을 맞고 같은 코스로 똑 같은 공을 찔러넣는 거만할 정도의 자존심, 연봉 협상장을 박차고 나오는 불뚝 성질, 프로야구 선수협 초대 대표로 상징되는 반골기질, 암이 온 몸을 갉아먹고 있어도 마지막까지 "내는 괜찮심더"라는 탕탕 큰소리까지…. 만약 부산 정서를 오롯이 육화(肉化)시킬 수 있다면 그것은 최동원이라는 형태일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결국 다른 길을 걸었지만 김영삼과 노무현 두 사람 모두에게 묻어나는 어떤 냄새다. 그 냄새의 주인공이 바로 최동원이다. 하지만 노무현은 이미 갔고 김영삼은 노쇠했고 최동원도 갔다.

새로운 부산 남자들의 냄새는 다르다. 안철수, 문재인, 조국…. 소프트한 감성과 내 이야기를 잘 들어줄 것 같은 느낌을 갖춘 이들이다.

YS나 노무현, 최동원은 '내 아들이었으면 든든하고 자랑스럽겠다'는 남자들인데 안철수, 문재인, 조국은 '저런 사위 보고 싶다'는 남자들이라는 차이다. 이런 분류를 전하며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자 이호철 전 수석은 "딱 맞는 말이다"고 무릎을 쳤다.

아들의 시대가 가고 사위의 시대가 올 것인가? 부산의 한 신문사 정치부 기자는 "그런 변화의 조짐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면서도 "그래도 바닷가 사람들 '욱'하는 정서가 쉽게 변하진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진짜배기 부산남자의 죽음과 새로운 부산 남자들의 부상이라는 엇갈린 장면이 큰 변화의 서막인지 아직은 가늠키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단지 정치공학적 선거 전망의 차원에서 접근할 문제 이상이라는 것이다.

2011년 8월 19일 금요일

"김재규장군"이 국립묘지에 없는 이유가 한국인들의 수준이다

1961년~1992년 약 30여년이 TK 권력 세력의 전성기 역사다.
경북 구미출신 박정희의 5.16 군사쿠테타
경북 대구출신들이 주축인 5.17 군사쿠테타

그래서 TK는 한국사회를 휘어잡고 농락할 수 있었다.
강력한 군사독재는 그 힘이다.

그러고보니 "반란의 기질" 이 TK세력의 타고난 유전적 기질인가? 홍노족이라 그런가?
벌써 두번씩이나 군사반란을 획책하고 30여년을 군사독재로 권력을 장악했으니
틀린 말도 아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한 사건은 TK가 TK 두목을 권총으로 처단한 웃지 못할 사건이다.
경북 선산출신 김재규가 경북 구미출신 박정희를 사살했다.

왜 그랬을까? 고향사람들끼리 살육을 벌인 자학적 살인극이다.

그 뒤를 이어 군사반란으로 학살극을 토대로 등극한 군사독재세력인 TK신군부는
고향 선배인 김재규를 처형한다.후배들이 권력을 잡고 고향 선배를 처형했다.

그런데 그 후배들인 전두환과 노태우는 천문학적인 부정부패 뇌물잡범들이다.
곧 결과가 말해주듯이 양아치에 불과한 불의한 자들임이 부정부패 결말로 증명된다.
올바른 인간상이 아니다.

그럼 총체적 TK 30년 독재권력의 성격은 무엇인가?
독재권력을 유지하면서 권력에 취해서 "지랄발광"을 치다가 지들끼리 쏴서 죽이고
지들끼리 처형하고 군사반란을 두번이나 일으키며,

그들이 항상 주장하는 바, 북한 빨갱이집단이 남침을 넘본다며,,,가장 애국자인양
한국의 민간인들을 잡아다 빨갱이라고 마구 고문하고 잡아 죽인자들이다.

그런네 북한 빨갱이가 호시탐탐 남침을 꿈꾼다고 국민들에게 겁박하고서 빨갱이도
아닌데 빨갱이라고 죄를 뒤집어 씌워 고문하여 간첩만들기 명장들인데,,
"거짓말장이 양치기 소년과 늑대이야기"를 꿈군 세력이다.

이런 극히 위험한 중차대한 순간에,
국가안보에 치명적 헛점인 군사반란을 획책하여 군권을 개판으로 만든 저들이
오히려 그 핑계를 한국의 좌파들에게 뒤집어 씌우고 지들의 망나니 짓은 가리려한다.

두 군사반란세력의 독재력은 "고문왕국 대한민국"에서 그대로 노출된다.
고문왕국 대한민국을 만든 노가다 권력이 바로 저들이다.야만국이엇다.
고문으로 통치한 국가가 야만국가 아니더냐?

박정희는 이미 "인혁당 관련자 8인의 교수형" 즉 죄없는 지식인들을 죄를 조작하여
한꺼번 새벽에 교수형으로 처형한 악독한 불의한 자다.또한 국가원수라는자가
자기 침실로 딸같은 연에인을 비롯한 아리따운 조국의 여인들을 독재력을 이용해
젊은 여성들의 육체를 탐하였다. 박정희는 권력도 정복하고 여자도 정복한 인물이다.

불의한자다.

전두환 노태우는 천문학적인 부정부패를 저질러 대한민국 대통령의 권위를
양아치로 만든 주범들이다.

불의한 자들이다.

그런데 이 불의한 자들이,,
못난 무지한 속민적 한국인들에 의해 영웅으로 둔갑하는 마술을 부린다.

이미 국가의 준엄한 법에 의해서 내란의 수괴로 판결났슴에도 아랑곳도 안한다.
헌법과 법을 조차도 농락하고 무시한다.그 이유는 저들이 아주 시건방진세력이어서다.

이 불의한 자들이 모두다 "국립묘지"행이다.
저들의 졸개들도 모두다 국립묘지행이다.

가히 군사반란군의 묘지가 국립묘지가된것이다.
이번 안현태의 보쌈 묘지 만들기는 그 절정이다.

그런데 이 불의한자들을 총살한 "의사" 김재규는 남한산성에 외롭게 모셔져있다.
죽어서도 외롭게 고독을 씹는듯하다.같은 TK세력이지만 연민의 정이 느껴진다.

불의한 군사독재세력들을 처단했는데도 왜 국립묘지에 묻히지 못하는가?
바로 한국을 아직도 뒤에서 지배하는 눈에 보이지않는 독재세력들이 파워를 부려서이다.
아직도 불의한 세력들이 뒤에서 숨어서 한국사회를 조종한다는것이다.

저들은 모두다 불의한 세력이다.
그 불의한 세력을 처단하려한게 김재규이고,,
김재규 자신이 더 불의한 세력에게 처형당한다.

그러고보니 불의한 넘들이 지난 30여년간 대한민국을 독재적으로 통치한것이다.

저들의 공로라함은..
불의한 세력이 주체이고 공로라함은 그저 약간 양념일뿐인게 올바른 역사다.
민주주의이기에 공로도 인정하는것이다.

저들의 정확한 정체는 이것이다.
이집트의 무바라크 권력, 시리아의 아사드 권력, 튀니지 독재권력,
버마의 군사독재권력 바오 이것이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저들을 어찌 보고있는것일까?

김재규가 인권말살의 범죄자인 군사독재자를 처단한것은 결코 불의한 행위가 아니다.
독재자는 박정희든 전두환이든 김정일이든 사담 후세인이든,, 모두다 불의한 세력이다.
독재자의 처단은 그자체로 구국영웅이다.전범을 처단한것이다.

왜 김재규가 남한산성에 묻혀야하나... 그는 국립묘지에 묻혀야한다.
군사독재자를 처단한 영웅으로 말이다.

그게 인류 보편의 원리인데 요즘에 그 올바른 역사 반대로 간다.
인류 보편의 원리가 무시되고 한국극우보수 맘대로 역사가 진행된다.

그 이유는 한국인들이 아직도 깨우치지 못한 무지한 족속이란 결론이다.
세계인으로써 명함을 내밀기는 아직 멀엇다는것이다.아직은 후진국 정신구조다.

그 후진국의 굴레를 벗으려면 아직도 멀었다. 아무나 선진국 되는게 아닌가보다.

김재규 묘지명을 보니,,
"義士 김재규 장군묘"이다. 올바른 일을 한 장군 김재규로 되어있다.
독재자는 불의한 것이고 불의한 독재자를 처단한것은 무엇인가?
인류 보편의 눈으로 바라다보자,,

만일 김재규가 의사가아니라면,,
저 일련의 사태는 TK 군사독재세력들의 주체못할 지랄 발광 권력놀음짓인가?
지들끼리 죽이고 살리는 이보다 더한 무책임한 국가안보 훼손행위가 어데있다니?
분열된 군부가 북한군의 단결된 힘을 이길수 있었느냐 이거다.
누가 더 중한 책임인가?

김재규는 국민들의 인권을 말살하고 죄없는 지식인들을 잔혹한 악질 고문으로 죄를
뒤집어 씌워 꼴리는대로 처형한 군사독재자 박정희와 간신중 간신인 차지철을 처단
한것이 맞지아니한가?

민간인들 수백명을 총칼로 위협하여 무참히 학살한 전두환세력은 국립묘지행이고,,
독재자 박정희와 간신배를 처단한 김재규는 왜 남한산성에 외롭게 묻혀야하나?


2011년 8월 10일 수요일

모바일블러그

서울시와 화사는 가스충전비를 기준시급보다 적은 금액으로 책정(서울시임의대이는로) 지급하옜는바 이는 서울시버스노동조합을 무시한것 이며 서울시및 운송사업조합 정부행정안전부등관련공무뭔의 졸속행저미다.법적으로 투쟁하겠다

2011년 7월 20일 수요일

김재동어록

김제동 어록

1. 사랑했다면...앞을 보고...
사랑할거면...서로를 보고...
사랑한다면...같은곳을 보라...

2. 사랑은 서로 마주보는게 아니라 같은곳을 보는 것이다.

3. 사랑은 기댈곳을 찾는 곳이 아니라 기대어 줄곳을 만들어 주는 곳.

4. 이세상에 반대가 없는 두 단어는 우주와 사랑입니다.
우주는 끝이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끝이 없는것 조차도 우주안에 포함되어 있는겁니다.
그리고 사랑의 반대가 미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지만
미움도 사랑에서 파생된 단어에 불과합니다.
사랑과 우주의 공통점은 그 속에서는 우주나 사랑을 바라볼 수 없는 것입니다.

5. 우주는 존재합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없는 우주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6. 스토킹은 날 위해 그 사람의 앞모습을 잡아두는 것이고,
사랑은 그 사람을 위해 그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봐 주는 것이다.

7. 남자친구를 기다린다고 생각하지말고,
자랑스러운 남자친구를 내 조국에 임대해주었다고 생각하고,
나도 같이 나라를 지킨다고 생각을 하면 기다리는 게 아니라 함께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 남자친구를 군대에 보낸 여성분들에게 남자친구를 기다려달라며...

8. "독일의 속담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금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되면,

별이 아름답다는 것을 잊어버린다.

여러분은 아직 금의 아름다움보다는

별의 아름다움을 즐기실 나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젊음 영원히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9. 하늘의 별만을 바라보는 사람은, 자기 발 아래의 아름다운 꽃을 느끼지 못한다.

10. "당신이 이 세상에 세잎클로버로 태어난 것을 더 이상 슬퍼하지 마십시오.
만약 당신이 네잎클로버로 태어났다면

이미 누군가의 손에 의해서 당신의 허리는 잘려져 나갔을 것을...
더 이상 당신의 잎이 세잎인 것을 슬퍼하지 마십시오.
이제 당신의 인생에서 마지막 행운의 한 잎은 제가 되어드리겠습니다.

사랑합니다."

11. 태어날 땐 서로 다른 장소에서 태어났지만 이젠 같은 장소에 있을 것이며

태어날 땐 다른 하늘을 보고 태어났지만 앞으로는 같은 하늘을 보게 될 것이며

태어날 땐 서로를 모르고 태어났지만 앞으로는 서로를 알아가게 될 것이며

태어날 때 다른 부모를 섬겼지만 이젠 한 부모를 섬기게 될 것이며

이제껏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지만 앞으로는 두 발이 하나가 되어 하나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그 첫발걸음에 무한한 영광이 깃들기 바랍니다.

12. 날 버리고 간 사람에게 복수하지말고, 후회하게 해라.
- 괜히 술먹고 그 집에 가서 창문에 돌 던지지 말라며...

13. 김제동의 '이별 극복법'
그 여자가 결혼해서 2층 집을 지으면 난 양 옆에 4층을 짓고
그 여자가 4층 지으면 난 양옆에 8층을 쌓아 올리고
그 여자가 16층빌딩을 쌓아 올려면 난 양옆으로 해서 32층 빌딩을 쌓아 올려서
그 여자와 남편이 평생 햇빛을 보면서 살지 못하도록 만들어 주는거죠.
그 여자가 치킨집을 시작하면 난 양계장을 시작해서 닭을 공급하지 않는거고
그 여자 남편이 돈까스 집을 시작하면 난 양돈업을 시작해서 돼지를 공급하지 않고
그리고 차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 여자가 타는 차보다 1단계 더 높은 차를 타야 합니다 약을 올리는거죠.
소형차를 타면 중형차를 타고 중형차를 타면 대형차를 타고 대형차를
타면 난 버스나 트럭을 몰고 가서 옆에서 계속 빵빵 거리는거죠.
그것이 정말로 후회하도록 만들어 주는거죠.
그리고 "언젠가 언젠가 날 놓친 걸 꼭 후회하게 될거다"
이렇게 속삭여 줍니다.

14. 날 버린 여자는 지금 후회 할거예요 씨에프 두개나 찍었어요.

15. "어떤 커플이 이 세상에서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간단하게 생각하면 만날 확률 안 만날 확률 반반이죠.
하지만 따져보면 내가 남자로 태어나고 그녀가 여자로 태어날 확률
1/2 , 이 세상의 수많은 국가 약 200개국 중에 대한민국에서 태어날
확률 1/200 , 대한민국에서도 같은 지역에서 태어날 확률 우리나라의
수많은 지역을 약 1000개의 시, 도, 군, 읍, 면이라 해도 1/1000,
그리고 같은 시간대에 있을확률, 시간을 숫자로 환산하면 약
1/100000000...
앞으로 아무리 좋은 성능의 컴퓨터가 나와도 이 확률을 계산할 수는 없습니다.
즉 어떤 커플이 이렇게 만나게 된것은 인연이 아닙니다.
인연이라고 할수 없습니다.
그것은 기적입니다."

16. 사랑이 아름다운 이유는 기억을 추억으로 만들어 준다는것입니다.

17. 여자는 첫사랑을 기억에 남기고 남자는 첫사랑을 가슴에 남긴다.

18. 사랑이란건 인간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 보여주기 위해
신이 만든것이 아니라 인간이 고통과 어려움 속에서 얼마나
잘해쳐 나갈수 있는가를 보여주기 위한 신의 시험표이다.

19. 영원히 살 것처럼 꿈을 꾸고,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살아라.

20. 가장 낮은 사랑이, 가장 깊은 사랑일 수도 있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기 때문에 바다를 이룰 수 있다.

21. 내 비밀은 아주 간단한 거야.
무엇이든 마음으로 보면 가장 잘 보인다는 거지.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거든.
- 어린 왕자의 편지 중에서 -
항상 여러분들과 마음으로 보았으면 합니다.
그래서 제가 눈이 작아서 행복합니다.^^

22. 자신의 단점을 깊숙히 숨겨두지 말고 햇볕을 쏘이게 하라.
그래야 그 단점이 광합성을 하여 꽃을 피울 수 있다.

23. 모든 인간이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단점도 다 신의 창조계획과 의지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히말라야 산 봉우리에 작은 풀 한 포기에 맺혀있는 이슬 한 방울에도
신의 창조계획과 의지가 들어 있다.

24. 미국의 한 보험회사에서 가장 판매율이 좋은 사람은 다름 아닌
말을 더듬는 사람이었다. 이 사람은 처음부터 자신이 말을 더듬는다고
고객들에게 말을 했으며 이 말을 한 이후부터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자신은 편하게 말할 수 있어 좋았고, 고객들은 그 사람의 말에 더 집중하게 되어
성공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는 것이다.

25 백조라는 것은 언젠간 호수를 박차고 날아오를 새

26. 키가 작은 나풀레옹이 산 정상에 올라갔을 때 키가 아주 큰 적군이
앞을 떡하니 버티고 서 있었데요.
그때 그 적은 나풀레옹을 비꼬며 그 작은 키로 무슨일을 할수 있을것 같냐며
너는 나를 꺾지 못할 꺼라고 말했데요.
그때 나풀레옹이 이랬다고 해요.
비록 땅에서 부터 재는 나의 키는 너보다 작지만, 하늘에서 부터 재는
나의키는 너보다 훨씬 크다. 내가 너보다 키는 작을 지언정 너를 꺾고
자하는 나의 맘은 누구보다 더 크다고...

27. 대구 시내 겔러리존에서 제동아저씨가 코너를 진행하는데...
거의 막바지에 달에서...제동님께서 춤에자신있으신 분은 나와 주세요 라고
한적이 있습니다..
시간은 계속 지나가는데 아무도 나오지 않는데,

뒤에서 지나가시는 어떤 무서운 형들 가운데 한 명이

엄청난 굵은 목소리로 "저기요∼노래하는 겁니까 춤추는 겁니까?"
라고 무섭게 말했습니다.

구경하던 사람들은 갑자기 조용해졌죠.
그아저씨의 무서움 때문이랄까.

저는 이 상황을 어떡해 할까
제동형님의 행동을 유심히봤죠.
그? 제동형님의 말씀...

"노래하는거냐구요?춤추는거냐구요?
지금15분동안 춤추는 것이라고 말씀드렸는데,

가까이있었으면 귀싸대기를 날렸는데...
라고 분위기를 완전히 업 시키더라구요 어찌나 웃기시던지..

28. 결혼식 사회 전문입니다.
30분에 150만원, 40분에 200만원, 신부 친구가 많으면 공짜입니다.

29. 겨울 바다와 좋은 친구의 공통점은 별로 특별한게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겨울 바다와 좋은 친구가 좋은 것은 항상 변하지 않고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이다.

30. 매일 맑은 날만 계속된다면 이 세상은 사막이 되었을 것이다.

31. 세상에서 최고로 느낄수 있는 기쁨은 최고로 체념할때이다.

32. 운명은 우연을 가장해서 찾아온다.

33. 세상에서 가장 장엄한 광경은 불리한 역경과 싸우고 있는 인간의 모습이다.

34. 평생 모든 사람을 좋아하고 한 사람만을 사랑하면서 살아가다
눈감을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행복한 삶이다.

35. 러브레터 리플해주세요 에서,
제동형 : 키스할 때 담벼락에 탁 밀어넣고 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도현형 : 그렇죠. 전봇대도 있고.
제동형 : 전봇대엔 개들이 있지요.
도현형 : 말못하고 쓰러짐.

김재동어록

김제동 어록

1. 사랑했다면...앞을 보고...
사랑할거면...서로를 보고...
사랑한다면...같은곳을 보라...

2. 사랑은 서로 마주보는게 아니라 같은곳을 보는 것이다.

3. 사랑은 기댈곳을 찾는 곳이 아니라 기대어 줄곳을 만들어 주는 곳.

4. 이세상에 반대가 없는 두 단어는 우주와 사랑입니다.
우주는 끝이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끝이 없는것 조차도 우주안에 포함되어 있는겁니다.
그리고 사랑의 반대가 미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지만
미움도 사랑에서 파생된 단어에 불과합니다.
사랑과 우주의 공통점은 그 속에서는 우주나 사랑을 바라볼 수 없는 것입니다.

5. 우주는 존재합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없는 우주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6. 스토킹은 날 위해 그 사람의 앞모습을 잡아두는 것이고,
사랑은 그 사람을 위해 그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봐 주는 것이다.

7. 남자친구를 기다린다고 생각하지말고,
자랑스러운 남자친구를 내 조국에 임대해주었다고 생각하고,
나도 같이 나라를 지킨다고 생각을 하면 기다리는 게 아니라 함께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 남자친구를 군대에 보낸 여성분들에게 남자친구를 기다려달라며...

8. "독일의 속담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금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되면,

별이 아름답다는 것을 잊어버린다.

여러분은 아직 금의 아름다움보다는

별의 아름다움을 즐기실 나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젊음 영원히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9. 하늘의 별만을 바라보는 사람은, 자기 발 아래의 아름다운 꽃을 느끼지 못한다.

10. "당신이 이 세상에 세잎클로버로 태어난 것을 더 이상 슬퍼하지 마십시오.
만약 당신이 네잎클로버로 태어났다면

이미 누군가의 손에 의해서 당신의 허리는 잘려져 나갔을 것을...
더 이상 당신의 잎이 세잎인 것을 슬퍼하지 마십시오.
이제 당신의 인생에서 마지막 행운의 한 잎은 제가 되어드리겠습니다.

사랑합니다."

11. 태어날 땐 서로 다른 장소에서 태어났지만 이젠 같은 장소에 있을 것이며

태어날 땐 다른 하늘을 보고 태어났지만 앞으로는 같은 하늘을 보게 될 것이며

태어날 땐 서로를 모르고 태어났지만 앞으로는 서로를 알아가게 될 것이며

태어날 때 다른 부모를 섬겼지만 이젠 한 부모를 섬기게 될 것이며

이제껏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지만 앞으로는 두 발이 하나가 되어 하나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그 첫발걸음에 무한한 영광이 깃들기 바랍니다.

12. 날 버리고 간 사람에게 복수하지말고, 후회하게 해라.
- 괜히 술먹고 그 집에 가서 창문에 돌 던지지 말라며...

13. 김제동의 '이별 극복법'
그 여자가 결혼해서 2층 집을 지으면 난 양 옆에 4층을 짓고
그 여자가 4층 지으면 난 양옆에 8층을 쌓아 올리고
그 여자가 16층빌딩을 쌓아 올려면 난 양옆으로 해서 32층 빌딩을 쌓아 올려서
그 여자와 남편이 평생 햇빛을 보면서 살지 못하도록 만들어 주는거죠.
그 여자가 치킨집을 시작하면 난 양계장을 시작해서 닭을 공급하지 않는거고
그 여자 남편이 돈까스 집을 시작하면 난 양돈업을 시작해서 돼지를 공급하지 않고
그리고 차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 여자가 타는 차보다 1단계 더 높은 차를 타야 합니다 약을 올리는거죠.
소형차를 타면 중형차를 타고 중형차를 타면 대형차를 타고 대형차를
타면 난 버스나 트럭을 몰고 가서 옆에서 계속 빵빵 거리는거죠.
그것이 정말로 후회하도록 만들어 주는거죠.
그리고 "언젠가 언젠가 날 놓친 걸 꼭 후회하게 될거다"
이렇게 속삭여 줍니다.

14. 날 버린 여자는 지금 후회 할거예요 씨에프 두개나 찍었어요.

15. "어떤 커플이 이 세상에서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간단하게 생각하면 만날 확률 안 만날 확률 반반이죠.
하지만 따져보면 내가 남자로 태어나고 그녀가 여자로 태어날 확률
1/2 , 이 세상의 수많은 국가 약 200개국 중에 대한민국에서 태어날
확률 1/200 , 대한민국에서도 같은 지역에서 태어날 확률 우리나라의
수많은 지역을 약 1000개의 시, 도, 군, 읍, 면이라 해도 1/1000,
그리고 같은 시간대에 있을확률, 시간을 숫자로 환산하면 약
1/100000000...
앞으로 아무리 좋은 성능의 컴퓨터가 나와도 이 확률을 계산할 수는 없습니다.
즉 어떤 커플이 이렇게 만나게 된것은 인연이 아닙니다.
인연이라고 할수 없습니다.
그것은 기적입니다."

16. 사랑이 아름다운 이유는 기억을 추억으로 만들어 준다는것입니다.

17. 여자는 첫사랑을 기억에 남기고 남자는 첫사랑을 가슴에 남긴다.

18. 사랑이란건 인간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 보여주기 위해
신이 만든것이 아니라 인간이 고통과 어려움 속에서 얼마나
잘해쳐 나갈수 있는가를 보여주기 위한 신의 시험표이다.

19. 영원히 살 것처럼 꿈을 꾸고,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살아라.

20. 가장 낮은 사랑이, 가장 깊은 사랑일 수도 있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기 때문에 바다를 이룰 수 있다.

21. 내 비밀은 아주 간단한 거야.
무엇이든 마음으로 보면 가장 잘 보인다는 거지.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거든.
- 어린 왕자의 편지 중에서 -
항상 여러분들과 마음으로 보았으면 합니다.
그래서 제가 눈이 작아서 행복합니다.^^

22. 자신의 단점을 깊숙히 숨겨두지 말고 햇볕을 쏘이게 하라.
그래야 그 단점이 광합성을 하여 꽃을 피울 수 있다.

23. 모든 인간이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단점도 다 신의 창조계획과 의지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히말라야 산 봉우리에 작은 풀 한 포기에 맺혀있는 이슬 한 방울에도
신의 창조계획과 의지가 들어 있다.

24. 미국의 한 보험회사에서 가장 판매율이 좋은 사람은 다름 아닌
말을 더듬는 사람이었다. 이 사람은 처음부터 자신이 말을 더듬는다고
고객들에게 말을 했으며 이 말을 한 이후부터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자신은 편하게 말할 수 있어 좋았고, 고객들은 그 사람의 말에 더 집중하게 되어
성공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는 것이다.

25 백조라는 것은 언젠간 호수를 박차고 날아오를 새

26. 키가 작은 나풀레옹이 산 정상에 올라갔을 때 키가 아주 큰 적군이
앞을 떡하니 버티고 서 있었데요.
그때 그 적은 나풀레옹을 비꼬며 그 작은 키로 무슨일을 할수 있을것 같냐며
너는 나를 꺾지 못할 꺼라고 말했데요.
그때 나풀레옹이 이랬다고 해요.
비록 땅에서 부터 재는 나의 키는 너보다 작지만, 하늘에서 부터 재는
나의키는 너보다 훨씬 크다. 내가 너보다 키는 작을 지언정 너를 꺾고
자하는 나의 맘은 누구보다 더 크다고...

27. 대구 시내 겔러리존에서 제동아저씨가 코너를 진행하는데...
거의 막바지에 달에서...제동님께서 춤에자신있으신 분은 나와 주세요 라고
한적이 있습니다..
시간은 계속 지나가는데 아무도 나오지 않는데,

뒤에서 지나가시는 어떤 무서운 형들 가운데 한 명이

엄청난 굵은 목소리로 "저기요∼노래하는 겁니까 춤추는 겁니까?"
라고 무섭게 말했습니다.

구경하던 사람들은 갑자기 조용해졌죠.
그아저씨의 무서움 때문이랄까.

저는 이 상황을 어떡해 할까
제동형님의 행동을 유심히봤죠.
그? 제동형님의 말씀...

"노래하는거냐구요?춤추는거냐구요?
지금15분동안 춤추는 것이라고 말씀드렸는데,

가까이있었으면 귀싸대기를 날렸는데...
라고 분위기를 완전히 업 시키더라구요 어찌나 웃기시던지..

28. 결혼식 사회 전문입니다.
30분에 150만원, 40분에 200만원, 신부 친구가 많으면 공짜입니다.

29. 겨울 바다와 좋은 친구의 공통점은 별로 특별한게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겨울 바다와 좋은 친구가 좋은 것은 항상 변하지 않고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이다.

30. 매일 맑은 날만 계속된다면 이 세상은 사막이 되었을 것이다.

31. 세상에서 최고로 느낄수 있는 기쁨은 최고로 체념할때이다.

32. 운명은 우연을 가장해서 찾아온다.

33. 세상에서 가장 장엄한 광경은 불리한 역경과 싸우고 있는 인간의 모습이다.

34. 평생 모든 사람을 좋아하고 한 사람만을 사랑하면서 살아가다
눈감을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행복한 삶이다.

35. 러브레터 리플해주세요 에서,
제동형 : 키스할 때 담벼락에 탁 밀어넣고 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도현형 : 그렇죠. 전봇대도 있고.
제동형 : 전봇대엔 개들이 있지요.
도현형 : 말못하고 쓰러짐.

김제동이 남긴 촌철살인 명언

김제동씨는 정말 어록 제조기인듯 합니다.

그가 한 어록을 한번 살펴볼까요??









"난 괜찮습니다."



"나보고 눈 작다고 해도 난 괜찮아요.



당신들은 세상을 크게 보지만 나는 자세히 보고요.

당신들은 눈에 먼지가 들어가지만 나는 안들어갑니다.



타인이 만든 기준에 놀아날 필요가 없습니다.

나는 남들이 말하는 것,

기준에 대해 그렇게 생각 안할 자유가 있습니다.



난 괜찮습니다."

가장 좋은 충고는 믿음!



"세상에서 가장 좋은 충고는 믿어주는 것입니다.

'다 알순 없지만 이해합니다.'



힘들다는 사람에게 힘내라는 건 또 다른 폭력입니다.



깊이 이해해주고 독려해주면 됩니다."

행복을 선택하면 행복해진다.



"주위 여건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갈리는 게 아닙니다.



행복과 불행은 주어지는 게 아니라

선택하는 겁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행복하기로 선택하는 순간

행복해진다는 사실입니다."

무등산 호랑이